나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아이였고, 덕분에 읽는 속도 자체는 꽤 빠른 편이다. 특히 에세이류는 쉽게 읽는다. 블로그에 일일이 쓰지 않아서 그렇지, 언니의 독설이라거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같은 책들은 읽기 시작하면 다 읽는데까지 2시간도 채 안 걸리는 것 같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같은 책은 서점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40분 정도 사이에 2/3정도를 읽은 것 같다. 물론 주석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감하는 독서의 수준은 높지 않아서, 요즘 내가 흥미를 가지고 사모으는(!) 책들을 읽어내는 속도는 너무 느리다. 에세이 중에서도 특히 사상가들의 에세이는 턱턱 막힌다. 개념 자체를 이해를 못한다. 어제, 드디어 처음부터 끝까지 활자에 눈을 준, "의심에 대한 옹호"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오호라~ 하고 재미있게 읽은 챕터는 '근본주의' 챕터 하나인 듯;;; 나머지 챕터는 이것이 무슨 소리이냐... @_@
이데아 이야기가 나오고 동굴..시장... 이것은 윤리시간에...아아아아아악-!!
이런 상태 =_=;; 요즘은 책 읽으면서 중고등학교 때 공부 안한 것을 후회한다 -_-;;;
(그러고보니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온 비유들은 모님께 좀 물어봐야겠다;;;;)
여러 독서가들의 말을 보면, 책은 의무감에 읽을 필요가 없이 내키는대로 편하게 읽으면 된다고 하면서도, 어렵게 읽은 책들이 쌓여야 독서력이 생긴다고들 하더라. 책을 좋아하는 단계에는 와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책을 읽어내지 못하는 요즘 나한테 책 읽기는 숙제다. 하아.
+ + +
![]() |
|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의심에 대한 옹호. 두 책의 원제는 공교롭게도 "In praise of Idleness"와 "In praise of doubt"으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다. In praise of, 부분이 어딘가에서 끌어온 제목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겠다. 그것을 찾아가야하는데 그건 아직 모르겠다 =ㅁ= (알아보려는 노력을 안함;)
일단 게으름도, 의심도,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게으름이나 의심이 아니라는 것.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말하는 것은 게으름피우는 것으로 보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게으름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버트란드 러셀이 지적한 "모든 것을 실용적으로 해석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몰라서 주저하게 되지만. =_=;
책에서 말하는 의심은 상대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너도 옳고, 나도 옳다. 혹은 너도 그르고 나도 그르다. 가 아닌, 맹신에 대한 제동, 정도랄까. ...여기까지만 이해했다 orz
그동안 이슬람 근본주의, 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그게 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걸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의심에 대한 옹호"를 읽은 의의라고 하겠다. 일단, 지금은.
















